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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집단기억’과 ‘기억투쟁’

‘집단기억’과 ‘기억투쟁’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0/05/06 14:28
조회수188

 ‘집단기억’과 ‘기억투쟁’

 

이 재 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

 

 『오하기문』은 전라도 구례 출신 매천 황현이 기록한 춘추필법의 동학농민전쟁사다. 19세기 당쟁과 세도정치의 폐해, 일본의 침략 등 동학농민운동의 발생원인과 경과를 자세히 기록한 당대의 탁월한 역사서다. 하지만 매천은 농민군을 ‘비적’으로 묘사하였다. 봉건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졌던 유학자로서 역사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상을 해보자. 만약 당시 농민군에 참여했던 누군가가 그 사건을 직접 기록했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비적’이 아니라 ‘혁명군’으로 묘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쉽게도 당시 농민들로서는 그럴만한 역량이 부족했다. 이렇듯 동일한 사건이지만 누가, 어떤 시각에서 기록하는가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오늘날 역사가들 사이에서 당시 농민군을 비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적’에서 ‘혁명군’으로 역사적 평가가 바뀐 것은 후대의 역사가들이 벌인 ‘기억투쟁’의 결과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5·18을 ‘폭동’으로 규정했던 것을 사건이 일어난 지 8년 만에 노태우 정권이 ‘민주화운동’으로 바꿔 불렀던 것도 치열한 기억투쟁의 결과다.


 1985년 간행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넘어넘어’)는 5·18을 ‘폭동’이 아니라 ‘민중항쟁’이라고 불렀다. 항쟁 참여자들이 직접 기록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유언비어’라며 살벌하게 단속했지만 1988년 국회 5·18청문회를 경유하면서 ‘폭동’은 마침내 ‘민주화운동’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5·18에 대한 평가는 ‘양시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질서유지를 위한 계엄군의 유혈진압도 정당했고, 광주시민의 저항도 정당했다는 식의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1997년 사법부는 12·12사건이 군사반란이고, 5·17비상계엄확대는 내란이었다고 판시했다. 노태우 정권의 어정쩡한 입장을 거부하고 신군부의 행위를 반란과 내란으로 확실하게 규정했다. 하지만 이 판결 역시 또 다른 한계를 안고 있었다. 『넘어넘어』에서 강력하게 제기했던 ‘양민학살’ 문제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사법부는 ‘국가가입은 피해’, 즉 국회, 행정부, 사법부 등 헌법이 정한 국가기구의 권한을 신군부가 불법적으로 침해했다는 점만따지고 단죄했을 뿐이다. 신군부가 광주시민에게 저지른 만행들, 즉 5월 21일 도청앞 집단발포, 주남마을과 송암동, 교도소, 해남 등지에서 벌인 무고한 양민학살과 성폭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고, 책임자를 단죄도 하지도 않았다. 국민(광주시민)이 없는 국가(헌법기관들)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할 때 당시 사법부 판결의 한계는 명백하다.


 박정희 시대의 복권을 꿈꾸던 박근혜 정권은 극우세력을 앞세워 ‘역사뒤집기’를 시도했다. 친일세력과 군사정권의 행적을 미화하고, 숱한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한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부정했다. 5·18을 북한특수군의 개입이라며 종편 방송을 통해 가짜뉴스를 확산시키고자 했던 극우세력의 입장을 방조하거나 노골적으로 두둔하였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5·18왜곡이 범람했다. 북한특수군 개입 등 5·18에 이념적 색깔을 덧칠함으로써 역사적 정당성을 훼손하려 했던 이유는 5·18이 박정희 유신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한 민주화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유태인학살, 일본군위안부, 백인들의 인디언 사냥 등 객관적으로 확인된 ‘집단기억’을 왜곡하거나 아예 지워버리려는 행위는 공동체의 과거를 학살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맞선 5·18 기억투쟁의 또 다른 형태는 2017년 5월 『넘어넘어』 전면개정판의 출간이다. 이 책은 미흡했던 재판과 철저한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국박근혜 정권은 탄핵되었고, 이번 4·15총선을 통해 그들의 정치적 기반은 소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상에서 5·18에 대한 왜곡과 조롱은 여전하다.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는 광주학살을 자행했던 신군부 잔존 세력들과 극우성향의 정치집단, 태극기부대, 반공체제에 기생하여 생명을 이어왔던 수구 언론의 탄탄한 결탁이 엿보인다. 그들의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40주년을 맞아 국회 차원에서 시작하는 5·18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이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다.

​<사진제공_나경택>

 

 


광주광역시 admin@gwang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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