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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7080 추억 뒤로하고 울창한 숲 변신

[빛고을 한바꾸 [사직공원]]

7080 추억 뒤로하고 울창한 숲 변신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0/10/12 14:00
조회수128

 

 

광주 시민과 희로애락 함께 한 사직공원 인기 여전
사직전망대 양림동과 함께 연인들 데이트 장소

 

 사람은 태어나 사물을 보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죽을 때까지 추억을 먹고 산다. 특히 코로나19로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을 소환해 잠시나마 즐거운 순간들을 떠올리고 미소 짓는 것은 코로나로 지쳐버린 삶에 있어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한다.


 광주 원도심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광주 사람 누구에게나 추억의 장소로 간직돼 있는 사직공원도 그런 에너지를 주는 명소가 아닐까.
광주 사직공원은 1924년 일제가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해 만든 공원으로 신공원이라 불렀다. 해방 후에는 사직단이 있어 사직공원이라 불리우고 지금도 그 이름을 쓰고 있다.


 사직공원은 90년대 초까지 동물원과 수영장이 있었으며 팔각정과 대관람차가 있어 7080세대의 추억이 어린곳이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졸라 동생과 함께 번질나게 드나들었고, 총각이었던 외삼촌은 외숙모와 처음으로 만난 장소였다.


 지산유원지와 함께 광주 최고의 위락시설이 밀집했던 사직공원은 광주시민들의 추억 언저리 어디쯤에 있을까? 그때 그 공원을 거닐던 소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가끔 사진을 꺼내 보며 추억이 깃든 사직공원을 거닐어 본다.

 

 

여전히 볼거리 풍성한 사직공원


 사직공원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광주관광 랜드마크인 사직전망대와 근대역사문화공간인 양림동이 인근에 있어 사직공원은 늘 데이트하는 연인으로 넘쳐난다. 사직공원 볼거리는 크게 통기타 거리와 시비(詩碑)거리, 공공프로젝트작품, 사직단, 사직전망대, 관덕정
등이다.


 70~80년대 사직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젊은이들은 사직공원 아래 통기타 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포크음악을 즐겼다. 필자 역시 충장로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며 저녁이면 동료들과 생맥주 한 잔에 포크송을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2000년대 이후 음악 장르의
변화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통기타 거리는 성지나 다름없다.


 옛 KBS 광주방송국 앞은 그냥 지나치지 말자. 건물 앞계단은 사직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의해 설치된 작품(공원 풍경 1-스텝, 작가 김영준). 이러한 작품은 사직공원에 네 곳이 있다. 호국무공수훈자 전공비 뒤쪽 길 (기슭- 작가 이민아), 사직단 옆 (사직공원 빈집 - 작가 조민
석), 관리사무소 (흔적 - 작가 박동준) 등이다.


예술작품은 물론 역사도 느낄 수 있는 곳


 사직공원길은 시비의 길이다. 어림잡아 십수 개의 시비가 있으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관리사무소 옆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옥중시 <춘산곡>이다.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에 내 없는 불이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충장공이 누명을 쓰고 죽음을 앞두고서 누명을 벗을 수 없는 자신의 억울함이 절절히 묻어난 시이다. 광주 사직단은 임금으로부터 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위임받은 지방 사직단으로 조선 태조 3년부터 1894년 갑오개혁까지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하지만 일제는 1907년 광주에 1개 중대 병력을 파견했고 첫 주둔지가 바로 사직단이 있는 양림산이었다. 이후 사직단은 훼손된 채 1960년대 말 사직 동물원이 들어서면서 헐렸고 1991년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자 사직단을 복원해 1994년 4월100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했다.


 동물원·팔각정의 추억 아득하고 사직단 아래 울창한 숲은 과거 동물원과 수영장이었다. 일요일이면 어머니를 졸라 동생과 함께 동물원 사자우리 앞에서 울음소리를 흉내 냈고, 여름이면 친구들과 수영장까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음박질했다. 하지만 동물원은 1991년 우치공원으로 옮겨갔고, 수영장에는 각종 체육시설이 들어섰다.


 30년 가까이 광주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동물원을 옮긴것은 민주화 이후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 자리에 동물원이 들어선 것에 대한 반발 여론과 놀이시설이 있는 우치공원 개발 덕이었다. 당시에는 환경보다 개발이 앞선시대로 사직공원에 동물원이 들어설 때 그 누구도 바른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직공원 정상에는 사직 전망대가 있다. 옛날에 그 자리에 팔각정과 대관람차가 있었다. 필자의 어머니는 당시 꽃다운 30대로 거의 한 달에 한 번 친구들과 동물원 나들이를 즐기며 팔각정에서 사진을 찍었다. 팔각정에 사진사가 있어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 주었으며 필자는일주일 후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오곤 했다.


 대관람차는 팔각정보다 늦게 지어졌고 먼저 헐렸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팔각정을 헐고 그 자리에 “대관람차를 다시 지었더라면 어땠을까?” 란 생각이다. 마땅한 위락시설이 없는 사직공원에 하늘을 원형으로 뱅글 돌면서 광주의 야경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는 대관람차는 인근 양림동과 함께 광주를 대표하는 핫플로 떠올랐을 것이다.


 추억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작아진다. 초등학교 때 운동장은 엄청 컸지만, 어른이 돼서 보면 손바닥만 한 것과 같다. 추억은 감상이기도 하지만, 평생을 살아가는 동력이기도 하다. 좋지 않았던 추억은 정화하고 좋았던 추억만 남겨 코로나19시대 나 홀로 추억 속으로 떠나는 비대면 여행을 사직공원에서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 심인섭 사진여행가

 

 

 

 


광주광역시 admin@gwang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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