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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소띠해에 들어보는 소 이야기

[빛고을 도약의 해 2021년 밝았다]

소띠해에 들어보는 소 이야기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1/01/11 14:37
조회수287

 

 

 백중(百中) 무렵 다른 농부들은 쉬는 중이었지만, 아버지는 일 년 중 가장 바쁘게 보냈다. 외양간 아궁이에 불을 지펴 정성스레 여물을 쒔고, 바닥의 지푸라기를 걷어내고 새 지푸라기로 깔았다. 집안에 겉돌던 잡음을 줄이고 온 신경을 외양간에 두며 밤이 되어도 소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소가 새끼를 낳을 시기였기 때문이다. 긴 산통 끝에 송아지가 나오면 지친 소의 등을 토닥이며 눈물을 닦아주곤 했다. 그렇게 소는 1년에 한 번씩 송아지를 낳았고, 우리 집은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외양간은 비어 있었다. 대
신 외양간 벽에 워낭과 멍에만 걸려 있었다. 그 뒤로 우리 집에서는 더는 소를 키우지 않았지만, 시골집을 새 단장 했을 때도 외양간을 그대로 두었다. 지금은 소도 없고, 소의 주인이었던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하지만 외양간은 여전히 남아있다.

2021년 신축년 소띠해 함차게 가자_연합뉴스


 지난 여름 섬진강이 넘쳤을 때 유독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었다. 그건 송아지가 축사 위로 올라가 있는 모습이었다. 소의 특징 중 하나가 물에 빠졌을 때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물에 몸을 내맡긴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수심이 얕은 곳으로 흐르게 되고 물 밖을 걸어 나오게 된다. 이는 소의 묵묵한 성격과 함께 수난을 당했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안쓰러운 모습을 연상케 했다. 물이 빠지고 몇 개월 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소는 안정을 되찾고 외양간을 지키고 있어 다행이었다.


 2021년은 신축년이다. 십간 중 여덟 번째인 신(辛)은 흰색이기 때문에 십이지중 소의 축(丑)과 만나 ‘하얀 소’의 해가 된다. 전통적으로 하얀 소는 하늘과 줄기를 상징하는 천간(天干) 신과 땅과 가지를 상징하는 지지(地支) 축을 짜 맞춘 거라 신성한 기운으로 읽힌다. 소는 평소에 우리 민족에게 근면과 성실, 우직함 등으로 민족성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거기에 신성한 기운을 포함한 ‘하얀 소’의 해가 되니 신축년을 향한 기대가 크다.

 

 광주도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주로 ‘와우형상(蝸牛形相)’인 경우이다. 광산구 우산동의 경우 우산(牛山)은 과거 면 소재지로 말미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지형이 소의 형상을 닮았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남구 칠석동은 와우상(蝸牛相), 황소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상이라 터가 무척 거세 이를 제지하기 위해 당산나무인 은행나무에 고삐를 묶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는 거센 터를 누르기 위해 마을의 터를 밟는 ‘고싸움놀이로’로 이어졌다. 북구 일곡동 삼각산의 한새봉은 숲의 모양새가 황소가 누워 있는 모습으로 ‘황우봉(皇牛峰)’에서 따왔다고 한다. 황우는 ‘큰 소’라고 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봉우리도 ‘여물봉’이라 부르고 골짜기 이름도 ‘소소리(높이 우뚝 솟은모양)’라 부른다. 이 밖에도 무등산 옛길 1길에는 ‘황소걸음 길’이 있다. 무등산을 오가는 사람들이 다녔던 길로 소에 짐을 싣고 가다가 잠깐 쉬어갔던 길이다.


 동양에서 소는 주로 풍요로움과 힘을 상징하는데 서양에서는 조력자나 상승을 의미하기도 한다. 뉴욕의 증권거래소 거리인 월 스트리트에는 거칠고 힘이 센 ‘돌진하는 황소상’이 있다. 한때 이곳이 소경매장이었던 점과 1980년대 미국의 주가가 하락할 때 이탈리아의 조각가가 주가 상승을 기원하며 세웠다. 황소상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또 서양의 전래동화에서 소는 어머니를 상징하거나 곤경에 처한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김홍도의 그림 ‘쌍겨리’의 소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겁없는 소녀과 황소상


 이중섭은 ‘소’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다른 화가들도 소를 그렸지만 유독 이중섭이 유명한 건 그가 살았던 힘든 시대를 우리 민족과 오랫동안 함께한 소로 그렸기 때문이다. 세월의 풍파에 몸을 맡기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점이 크게 부각되었다. 또 큰 눈망울을 끔벅이며 한 땀 한 땀 성실하게 제 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전쟁과 가난에서 벗어나는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특히 <흰 소>를 보면 굵은선으로 표현된 소가 우직하게 서 있는 모습이 역동적이면서도 듬직하다.

이중섭의 ‘흰소’를 관람하는 모습_국립현대미술관_이중섭 탄생 100주년_2016_연합뉴스

 


 새해 준비를 하면서 뜻하지 않게 이중섭의 미발표작 <황소> 그림, 영인본을 얻게 되었다. 순하고 여린 소의 이미지가 아닌 마치 뉴욕을 들이받을 것처럼 힘이 센 ‘돌진하는 황소상’을 닮았다. 예전에 외양간을 지키고 있던 소의 모습도 보이고, 소를 보냈으나 그 흔적을 지울 수 없었던 평생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도 생각난다. 어렸을 적부터 소를 가족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괜히 ‘소’라는 단어만 들어도 뭉클하고 힘이 난다.


 2020년은 세계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경제 불황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불안했다. 아직 그 늪을 벗어나지 못해 새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지자체마다 예정되었던 해맞이 행사도 코로나19 때문에 전면 취소된 상태이다. 2021년 1월 1일의 첫해는 오전 7시 26분에 독도에서 가장 먼저 뜬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안방에서 화면으로 지켜봐야 한다. 불안을 다 지우지 못하고 맞는 새해이다. 하지만 2021년 신축년, ‘하얀 소’의 해이다. 따라서 여유와 풍요, 힘 있는 소의 기운으로 우뚝 설 그 날에 대한 희망을 살며시 품어 본다.

 

 김해숙 소설가

 

 


광주광역시 admin@gwang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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