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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한바꾸

유성양복점

[오래된가게]

유성양복점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0/03/05 14:26
조회수170

 

최고의 맞춤옷을 만든다는 신념과 자부심 가득

“시간이 된다면 젊은이들과도 호흡할 가게 운영해보고파”

 

 김대용 씨의 ‘롱런’비결은 최고의 옷을 맞추겠다는 고집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타고난 성정이 꼼꼼하고 대충 하는 걸 못봐요. 그러니 옷도 내 개성대로 내가 추구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자부심으로 만들었죠.” 그가 옷짓는 일을 어떤 태도로 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원단들이 많음에도 흐트러짐 하나 없는 그의 가게가, 하나도 버리지않고 모아 둔 손님들의 옷맞춤용 ‘본’이, 10년이 넘어도 가지런히 보관중인 옷감 샘플북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김 씨는 어찌하다보니 현재까지 양복점을 운영하는 ‘최고참’이 됐다. 그의 선배세대는 이미 세상을 떴거나 모두 은퇴하고 없다. 한 때 한 달 평균 100벌, 결혼시즌이나 명절 때 등 특수가 있을 때는 200벌의 옷을 맞추기도 했고, 운영하던 공장에 최고 20여 명의 기술자들이 일했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사양길로 들어선게 양복점이다. 하지만 김씨는 여전히 매일이곳 가게로 출근한다. 아직도 ‘맞춤한’ 그의 손기술을 잊지 못하는 단골 고객들이나 새로이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꾸준하다. 이제 기성복이 대세가 된 시대라 기술자는 겨우 2명 남았고 재단보조도 없이 그가 혼자 한 달 10~15벌 정도를 만들고 있어 가게 운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다. 오히려 “나와서 시간 보낼 수 있는 일과 터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냐”며 웃었다.


 

“50년 넘게 직업을 바꾸지 않고 이 업에만 종사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는 김씨는 “젊어서야 간혹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일은 이길 밖에 없더라”며 평생 걸어온 길에 대해 후회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큰 재산이나 명예는 없어도 광주를 상징하는 충장로에 나와 50년 이상 살면서 도시의 변화상을 다 바라보았고 역사의 증인같은 삶을 살았다는 게 자랑스럽다”며 “특히 성업에서 쇠퇴, 침몰의 과정을 겪는 충장로를 지켜보면서 마치 내 인생과 같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움 도 든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야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젊은이들이 이런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아 양복점을 이을 사람이 없는게 아쉽다”는 김씨는 아직도 현역 못지 않은 꿈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한 10년만 젊었어도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고급스럽고 넓은 매장을 열어 젊은이들과도 호흡하고 의욕적인 영업도 펼쳐 좋은 옷을 많이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양복이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양복은 제2의 인생”이라는 김대용 씨. 그는 “아직도 남한테 지고 싶지않은 자존심이 살아있고,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장신정신이 남아있으니 당분간은 문닫지 않을 생각”이라며 젊은이 못지 않은 의욕을 보였다.

 

 


광주광역시 admin@gwangju.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