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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한바꾸

장사 50년 넘었는데 올해가 가장 호황입니다

[[오래된가게]산수동 두유]

장사 50년 넘었는데 올해가 가장 호황입니다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0/08/11 09:56
조회수215

 

 

 아닌 게 아니라 부부의 얼굴은 구순 또는 팔십 중반의 얼굴이 아니다. 콩이 건강식품인 것은 알려진 바지만 콩많이 드신 쥔장들은 우윳빛깔에 적당한 윤기가 흐르는게 활력 넘치는 중년의 얼굴이다. 아픈 데도 없단다. 노화에 따른 근력약화로 요즘 두 사람 다 허리가 휘고 아픈게 유일한 병치레. 흔한 속병 하나 없다. 누가 봐도 콩물의 효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50년 넘게 콩을 갈아 마
시고 있는 장본인들이니까.


 술에 찌들어 금주령을 선고받은 남편에게 내린 민간처방이 콩물. 그날부터 매일 콩을 갈아 마신 남편은 건강을 회복했고 이를 지켜본 지인들의 권유로 장사를 시작한 게 1971년이다. 산수동 509-29번지(현 동구 무등로513-2) 지금 이 자리였고 50년간 지키고 있다. 막걸리한 잔에 30원 하던 시절, 한 그릇에 50원을 받고 팔기 시작한 콩물은 20원, 30원, 50원씩을 올려가며 올해 3,500
원에 이르렀지만 맛은 변함이 없고 맷돌로 갈아 만드는 방법도 똑같다. 형편이 어려워 담배나 우표도 팔고 공중전화기도 운영했지만 모두 그만두고 지금 남은 것은 유일하게 두유다.


 이곳 콩물은 광주시민들의 건강도 50년간 지켰다. 단골들이 이를 증명한다. 콩물 사러 자전거타고 다니기 힘들어 가게 옆으로 이사까지 왔을 정도로 ‘40년 골수단골’이었던 고 박규호 교수(조대 의대), 병든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매일 콩물을 사다 먹여 건강을 되찾았다는 등의 사연은 광주시민들이 얼마나 이 콩물을 즐겨 마셨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산장 올라가는 길이 비포장이었던 시대
등산객들, 택시 운전사 등 서민들의 식사대용이나 영양식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


 20~30년 고객은 기본이고 40년 넘게 다닌 단골들도 수두룩하다. 묵은 고객들 이야기는 이 집에 보관 중인 단골명부에 상당수 기록돼 있다. 최근 20년간 기록한 단골명부에 기록한 이름을 대면 광주시민이면 다 아는 유명인들이 수두룩하다. 대학교수, 고위 공무원, 검·판사, 대사업가부터 뽀빠이 이상룡처럼 연예인도 있고 타지역 사람도 많다. 단골명부는 고객들의 사연이 사라질까 안타
까워 한 단골 오채선 씨가(전 고서중 교장) 1992년 만들어 준 것으로 가히 국보급이다.


 요즘엔 젊은 고객도 늘고 있다. 작년 10월 유명한 허영만 화백이 찾아와 텔레비전에 소개한 뒤 전국적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올해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것. 공씨는 “방송과 SNS에서 본 고객들이 전국에서 찾아오고 젊은이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 부산 대구서까지 찾아와 통째 사간다니 대단한 일이다.

 


 ‘무공해 두유’의 이런 장수비결은 콩물이라는 식품 자체의 덕이기도 했지만 맛과 위생을 지키려는 부부의 노력도컸다. 한때는 무등산 약수까지 떠다 콩물을 낼 정도였고 지금도 이온수기를 통한 물을 쓰고 있다. 여름엔 6시간, 겨울엔 20시간 이상 콩을 불려 사용하는 정성, 맷돌만 쓰는 고집, 고객이 소개해 준 청정지역 강진 병영의 우리 메주콩만 쓰는 한결같음이 오늘의 결과를 만들지 않았을까.


 이제 아무래도 고령의 부부가 하긴 힘들어 보이지만 2선으로 물러날 생각은 없다. 아들이 물려받을 의사가 있고 주말엔 도와주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고. “거동이 점점 힘들어가도 아직 콩물 내리는 데는 아무 문제없고 단골들도 계속 우리 부부가 해주길 주문하고 있어 당분간은 계속해야겠다”며 환하게 웃는 부부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글·사진 | 김옥열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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