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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한바꾸

“저는 ‘정우식’입니다” 자부심으로 기술자 외길

[[오래된 가게]수도악기]

“저는 ‘정우식’입니다” 자부심으로 기술자 외길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0/10/15 13:47
조회수58

 

 

 많은 베이비붐 세대가 그렇듯 그도 기술을 배워야 밥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에 기술을 배웠다. 1974년 겨울, 외삼촌의 권유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정읍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외삼촌은 ‘수도악기’에서 유명한 기술자였다고 한다. 악기를 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생, 복원, 제작 등의 전 과정을 배웠던 그는 1978년 외삼촌이 독립하여 가게를 차리자 따라나섰다. 전국의 학교 관악부를 돌며 악기를 고친 적도 있다. 그때는 악기도 귀하고 기술자도 귀해 기술자를 대하는 대우나 인심이 후했다. 1981년 광주로 내려와 금남로의 ‘영창악기’에서 일했다.


 “1981년에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여기가 불모지였어요. 악기를 고치려면 서울로 올라가야 했어요. 생각해 보세요. 간단한 문제 가지고 서울까지 가야 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제가 내려온 뒤로는 서울로 안 올라가고 여기서 고쳤어요. 광주뿐만 아니라 전남 지역까지 소문이 나서 제 이름이 여기저기 날렸지요. 광주시립관현악단이나 학교 관악부, 악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주고객이었어요.”


 1992년 3월에는 동구 예술의 거리인 궁동에서 ‘수도악기’란 상호로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고객이 늘면서 주차 문제 등이 생기자 2004년에 현재의 자리로(동구서석로 91) 옮겼다.


 그는 악기 중에서도 플루트나 트럼펫, 색소폰 등 관악기 전문이다. 관악기는 악기의 구조가 복잡하고 부속품도 많이 들어간다. 또 입술의 상태와 숨의 세기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악기의 특징을 잘 알아야 정확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요즘에는 악기가 대중화되고 전문적으로 악기를 배우는 게 아니라 동호회에서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오랜 시간 배웠지만, 전문적인 지식 없이 하다 보니 부속품을 잘못 연결해 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올바른 악기 사용 방법과 구조에 관해 설명해 준다.


 “좋은 악기란 뭐겠어요. 외관이 좋은 것만이 아니라 연주자가 의도한대로 소리를 내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야 부속품의 위치나 외관 등을 보겠지만 악기를 부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의 신체 사이즈나 폐활량에 맞는 악기가 좋은 거지요.”


 그는 홈페이지(
www.sudomusic.net)도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 있던 ‘수도악기’를 기억하는 사람이나 그의 이름을 알고 홈페이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관악기, 현악기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 악기 판매뿐만 아니라 악기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부속품인 액세서리, 신체 사이즈에 맞는 악기를 고르는 방법도 알려준다. 그가 만든 악기에는 시리얼 번호를 매겨놓고 고객 관리를 한다. 중국산 악기가 들어와 비싼 악기로 둔갑하는 때도 있어 그걸방지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악기를 관리하면 A/S 기간에 무상 수리나 고객 관리도 쉽다고 한다.

 


 그는 47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가족의 힘이라고 답했다.


 “사는 동안 힘든 일도 많았죠. 우리 때는 가난했었잖아요. 기술로 밥은 먹고 살지만, 그 기술이란 게 오롯이 쉬지 않고 성실하게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우리 가족이 버팀목이 되어 주었죠.”


 아버지의 영향으로 큰딸은 바이올린, 작은 딸은 플루트를 전공했다. 큰딸은 가끔 가게에 들러 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 준다. 가족은 그가 수없이 수리했던 악기 소리와 같을 것이다. 바이올린과 플루트처럼 명랑하면서도 때로는 트럼본처럼 묵직한 소리 말이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면서 기술자를 대하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상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때로는 상처를 받는다. 그렇지만 악기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금껏 걸어왔던 길을 묵묵히 걷겠다고 말했다.

 

글 | 김해숙 소설가
사진 | 오종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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