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빛고을한바꾸

광주에도 산성(山城)이 있다

[비대면 시대 광주 탐구 _ 무진고성]

광주에도 산성(山城)이 있다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1/01/19 14:25
조회수82

 

도시의 동쪽엔 시민들이 어머니 산으로 부르는 무등이서 있다. 산은 무려 1천 미터가 넘는 키로 도시 가까이 다가서서, 누대에 걸쳐 묵묵히 도시를 안고 지켜준다. 광주사람들에게 무등산은 에베레스트도 비교불가다. 그만큼 시민들에게 무등은 등급이 없는 아득한 높이로 각인된
산이다. 무등의 가치는, 도시가 안고 사는 서러움과 슬픔을 알지 못하면 감히 이해도 가늠도 되지 않는다. 이 무등산에 산성이 있단다. 광주에도 있다는 그 귀한 산성을 찾아 간다.

잣고개에 올라, 광주를 보다


 산수오거리에서 싸목싸목 산을 오른다. 원효사 쪽으로 꺾어지는 가파른 길이 구불구불 굽어지는 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덧 고갯마루에 당도한다. 옛 사람들의 정취를 더 느끼고 싶다면 장원초등학교 지나 곧바로 만나는 ‘무등산 옛길’을 택해서 올라와도 좋다.


 그 곳에 전망대 카페가 자리 잡고 서 있다. 광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지점이라 연인들이 한 번쯤 데이트 코스로 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여름 날 더운 도시를 탈출해 이 곳을 지나면, 일시에 허파꽈리 가득 신선한 숨결이 가득 넘친다. 일망무제. 미세먼지에 다소 흐릿하지만 광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숨을 몰아쉬며 오른 땀방울의 노력에 상응하는 보답이있다. 조망권이 최고다. 금남로를 비롯한 광주 시내가 바로 코 앞에 잡힐 듯하다. 저 멀리 송정리까지 들어온다.

구불구불 가파른 눈물고개


 이 잣고개를 통해 담양과 광주를 넘어 다녔다고 한다. 이 길 반대 편 청옥동이나 원효사 쪽에서 올라오면, 4수원지를 지나 ‘요산요수(樂山樂水)’ 표석을 지나서 잣고개까지 올 수 있다. 시내를 돌아 산수오거리에서 올라와 원효사로 가는 1187번 버스가 잣고개를 넘어 간다. 차가 없던 시절, 잣고개는 눈물고개였다. 지금은 도로가 잘 포장돼 있어서 실감이 잘 안 된다. 하지만 그전에는 이 고개는 자갈길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군사작전도로로 개설이 된 후, 무등산 관광도로로 포장이 되기 전이야기이다.


 무거운 나뭇짐을 지게에 진 짐꾼들, 바리바리 장사봇짐을 인 아낙들이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 그나마 달구지에 짐을 싣고와도 잣고개를 넘으려면 짐을 조금씩 덜어서 고갯마루까지 옮겼단다. 이 길은 또 화순 동복, 담양사람들이 소를 몰고 와 팔고 넘어가던 고개, 외통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소 팔고 돌아가던 사람들의 봇짐을 털던 산도둑들이 출몰하던 무시무시한 시절도 있었다 한다.

​잣고개, 성치(城峙) 그리고 무진고성


 잣나무도 자라지 않은 곳에 ‘잣고개’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아니란다. ‘잣’은 우리말로 성(城)을 뜻하는 말. 잣고개는 ‘성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란다. 그러면 과연 잣고개에 성이 있을까? 있다. 전망대에서 원효사 가는 길로 조금 더 가다보면 성이 보인다.


 복원 된 산성 앞 쪽에 세워진 안내판이, ‘빛고을 산들길’ 안내판과 함께 의좋게 서있다. 이 산성 터는 무등산 장원봉을 중심으로 잣고개 장대봉과 제4수원지 안쪽의 산 능선을 따라 쌓은 남북 1천 미터, 동서 5백 미터, 둘레 3천 5백 미터의 타원형 산성. 성은 바깥면만 돌로 쌓고, 그 안은 돌과 흙을 섞어 채웠다. 1988년, 1989년 두 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신라시대 때 처음 쌓았으며, 부분적으로 다시 고쳐 고려시대까지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4호로 지정한 이 산성은 건물터와 동문 터에서 출토된 유물로 ‘관(官)·성(城)·국성(國城)’ 등의 명문이 있는 기와조각들과 토기, 청자, 벼루등이 나와 예사롭지 않은 성터임을 보여준다. ​성을 쌓았던 당시에는 광주를 무진주(武珍州)라 하였으므로, 이름을 무진고성(武珍古城)이라 지었다. 무진고성을 그대로 풀어보면 광주의 옛 성이다.


 포곡식(包谷式: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른 성) 산성으로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을 쌓은 방식은 백제식 축성법을 보여주고 있다. 잣고개 정상에 있는 서문은 광주시내에서 무등산으로 가는 도로의 통과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잣고개와 석곡수원지 중간쯤에 위치한 동문도 일부 훼손되었다. 남문과 서문 터 주변에는 건물 터가 있는데, 건물 터는 성을 따라 능선을 따라 배치되어 모두 17개소가 확인되었다.


 코로나19 영향 때문인지, 드문 드문 만나는 산행객들이 인사를 하며 거리두기를 한다. 서로 먼저 마스크를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 마스크가 백신이다. 그렇게 가파르지 않은 산성 위를 오른다. 산성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다. 산성 위에서 보는 풍경도 멋지기만 하다. 멀리 갈맷빛 무등산이 눈 모자를 쓰고 있다. 발아래 도시가 석양빛에 눈부시게 빛을 발하며 응답을 한다.


 천변만화, 해질녘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다. 바닷가에서 보는 해지는 풍경과는 다른 감동을 준다. 해가 영산강쪽으로 넘어가면 도시는 하나 둘 불을 켜든다. 도로마다 길게 꼬리를 물고 자동차가 달린다. 도시에 불빛이 차오른다. 여러 말이 필요 없다. ‘빛고을’ 이다. 산길을 넘어온
가족들도 황금의 시간을 만끽하고 아쉬운 걸음으로 내려간다.

​글·사진 김경일 시인

 


광주광역시 admin@gwangju.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