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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한바꾸

‘대흥(大興)’을 이어받아 ‘송월타월’로 66년 전통을 이어 나가다

[광주 전남·북 ‘1호’ 대리점, 송월타월 대흥 대리점]

‘대흥(大興)’을 이어받아 ‘송월타월’로 66년 전통을 이어 나가다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1/02/22 17:18
조회수16

 

 

 ‘축 결혼’, ‘축 회장 취임’, ‘창사 00년 기념’, ‘축 돌’ 등. 하루에도 몇 번씩 쓰는 타월에는 행복하고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집 안에 있는 타월을 모아보니 주변 사람들의 인생사가 기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축복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이 드니 한올 한올 새겨진 글자에 눈길이 간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귀한 것이 ‘타월’이다.


 게다가 먼지가 나지 않고 물기를 뽀송뽀송하게 닦아주는 기술을 인증받은 곳인 ‘송월타월’은 품질 면에서 가장 유명하다. 송월타월 대흥 대리점은 1964년에 전라도에서 제일 ‘첫’ 번째로 대리점이 된 곳이다. 대리점 체결은 처음이었지만, 이미 1955년경부터 아버지였던 이정렬 씨는 충장로에서 잡화점을 했었다. 주로 양말을 제조, 판매하거나 타월을 판매했었다. ‘타월’이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다. 그때 상호가 ‘대흥(大興)’이었다. 크게 흥하라는 의미를 담았는데 송월타월의 정식 대리점이 되고도 아버지의 가게 이름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송월타월 뒤에는 항상 ‘대흥’이 붙는다. 대흥이라는 말이 붙어 있으면 아버지가 서 있는 것처럼 든든하다고
말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무조건 부지런해야 한다.” 5남 3녀의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항상 부지런함을 강조하셨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집안에는 사람들도 많았고, 먼 곳에서 오는 상인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아들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나 열정적인 아버지를 닮아갈 수 있었다. 현재 이곳 대리점주는 이형선 씨(62세)이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형님이 대리점주가 되었고, 1호점으로써 20여 년간 황금기를 맞아 번창했었다. 그는 1994년에 형님의 뒤를 이어 송월타월을 이어오고 있다. 이형선 씨가 처음 운영할 때는 현재 자리가 아니라 충장로 5가 86번지 근처였다. 지금의 자리(동구 충장로 23)로 온 것은 2004년도이다.


 이형선 씨는 충장로 출생이다. 충장로 5가에서(지금 위치 근방) 태어나 이곳에서 학교에 다녔으며, 지금까지도 60년 넘게 충장로를 지키고 있다. 한 곳에서 오랫동안 있으니 이곳 사람들에게 그는 ‘고향’ 같은 사람들이다. 함께 자랐던 사람들이 충장로를 떠나 먼 타국에 다가도 가끔 들르는 곳이 되었다. 장승처럼 60여 년의 세월을 한곳에서 충장로 사람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으니 먼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각만으로도 정감 가는 곳처럼 느껴질 것이다.


 “우리 집은 송월타월 전남·북 지역 1호점입니다. 1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그 유명한 송월타월이 괜히 대리점을 내줬겠습니까? 우리 집은 대리점 1호라는 명패를 달기도 전부터 유명한 집이었습니다.” ‘원조 1호’라는 자부심은 그에게 매우 중요하다. 다른 대리점들이 ‘송월타월’이라는 간판을 걸고 같은 회사 제품을 팔지만 1호가 갖는 자부심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머리와 가슴에 스며들어 고스란히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면 100% 최고급 코마사(타월)’ 같은 부드러운 말은 아무나 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고객들에게 팔 타월을 접으며 감촉을 익히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낼 수 있다.


 타월을 맞춤 제작할 때는 보통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이다. 한 고객은 자신이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축하한다는 의미로 글자를 새겨넣었었다. 그런데 그가 나이를 먹고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서 또다시 타월을 제작했었다. 그 후 또 세월이 흘러 자식이 결혼하여 기념 타월을 제작했고, 또 손주의 돌 기념까지 새겨넣었었다. 고객 중에는 타월 하나로 한 가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사람들도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점에 관해 물었다. 이형선 씨는 머뭇거림 없이 햇볕에 바짝 마른 타월처럼 말했다. “1호에 대한 자부심과 송월타월의 품질입니다. 수건 하나를 만들더라도 20여 가지의 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좋은 품질의 타월을 쓸 수 있습니다. 송월타월은 품질 면에서는 최고라 생각합니다.” 송월타월은 타월이나 우산 도매 전문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개업이나 칠순이나 취임식 같은 기념식이 아니더라도 고객들은 자신의 취향대로 맞춤 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는 타월이 그저 생활 필수 도구였다면 요즘에는 패션이 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천과 디자인으로 소량 제작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개성을 중요시하기에 타월 하나에도 정성을 쏟는 사람들이 많다.


 송정리 국숫집에 가면 손님들이 남겨 놓은 메모지가 많다. 힘내라, 사랑한다, 보고 싶다, 축하한다 등의 사랑의 말들. 그것들을 압축해서 적으면 타월에 새겨진 문구같다. 타월에 문구를 새겨 넣는 날은 축복의 날이다. 그래서 타월을 제작하면 할수록 좋은 일이 생긴다는 방증이 아닐까.

​글 김해숙 소설가
사진 오종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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