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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한바꾸

“광주전남 넘어 한때 시장 호령했죠”

[[오래된가게]전남의료기상사]

“광주전남 넘어 한때 시장 호령했죠”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0/09/10 13:44
조회수182

 

 

 누군가 사업체를 만들어서 자식이 대를 잇고, 그것도 같은 업종으로 수십 년을 이어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이롭고 존경과 찬사를 받아 충분한 일이다. 물론 외국에는 수백 년 된 기업도 있다지만 근대적인 상업의 역사가 짧고, 더욱이 사농공상의 문화가 엄연한 우리 현실에서 보면 70~80년의 가업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전남의료기상사의 이력은 엄청나다. 최근(사)충장상인회가 발간해 화제가 된 <충장로, 오래된 가게> 책자에도 첫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지역에선 유명한 곳이다. 무엇보다 산업적 측면에서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지역에서 그것도 의료기기를 생산하겠다고 창업했던 회사이고, 또 하나는 지역은 물론 전국적인 명성을 날린 유명 회사가 됐으며 한때나마 세계에 수출까지 했던 알짜기업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내력을 조금만 알면 이 회사가 단지 지역의 ‘오래된 가게’ 정도의 취급이 아니라 ‘한국 의료기기산업의 산역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남의료기상사는 창업 당시 이름이 ‘전남의과기제작소’였다. 의료기기를 제작하는 회사임을 분명히 한 이름이다. 관련 회사로는 전국서 두 번째 창업. 거의 발명가 수준이던 창업주 김상순씨는 처음 유리주사기를 생산해 빅히트를 쳤다. 열악한 국내상황에 수요는 폭발하던 시기니 당연히 국산주사기는 주가를 날렸다, 1952년엔 의료기기 뿐만 아니라 산업적 측면에서 매우 유용하고 쓰임이 많은 계량분야까지 진출해 회사 이름도 ‘전남계량의과기기제작소’로 바꾸고 사업을 확장했다. 50년대에는 온도계로, 60년대에는 체온계로, 70년대는 습도계로 시장을 석권하며 이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50년대 말 한국선 처음으로 체온계를 개발해 국산체온계 시대를 열었는가 하면 수은체온계를 자체개발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70년대엔 엽연초산업이 성장하면서 이에 필요한 습도계를 개발 빅히트하기도 했다. 체온계, 습도계, 비중계 등 3가지의 특허를 갖고 있는 것도 이 회사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회사가 잘 나가다보니 수기동 광주천변에 있던 공장은 한 때 직원들이 12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했다.


 창업주 김상순씨의 역할과 회사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일화. 당시 전남은 물론 전국적 기업이었던 탓에 전남대의대는 물론 조대의대, 광주국군통합병원, 진해해군병원 등이 개업할 때 모두 그가 의료기기를 구해 납품해줄 정도였고, 개인병원 의사들은 개업 때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에게 술을 사며 로비(?)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1966년에는 회사 이름을 ‘전남의료기상사’로 바꿨다. 이미 이 회사에서 생산한 온도계 등을 미국이나 일본 등 에서 수입해갈 정도였으니 판매를 중시하는 이름변경이 필요했다.


 고등학교 다니던 무렵부터 부친의 회사일을 돕던 김우평 대표는 이 회사를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잠깐 공무원 생활을 하던 김 대표는 1974년 부친의 부름을 받고 회사에 입사해 본격적인 회사 키우기에 나섰다. 한양대 공대 출신이자 영어에 능통했던 김 대표는 주로 영업, 특히 수출입 업무를 담당했다. 김 대표가 무작정 미문화원에 찾아가 미국회사이름을 찾아와 편지를 써서 체온계 등을 수출했던 일화, 인도네시아 대우사업장에 의료기기를 납품했던 일화 등은 유명하다. 90년대를 넘기면서부터는 보청기, 휠체어 등 선진국의 의료장비를 구매해 납품하는 쪽으로 발전하는 데 모두 김 대표의 역할이 컸다.


 잘 나가던 전남의료기상사는 1991년 창업주의 작고, 2년 뒤 공장 폐쇄, IMF로 이어지며 한때 시련을 겪기도 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수은을 사용하는 공장특성상 외곽 이전을 준비했으나 여의치 않아 포기하면서 제조공장이 문을 닫았고 이후엔 수입 및 유통상으로 전화됐다. 회사에는 지금도 과거 생산했던 제품들이 보존되 옛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


 김우평 대표는 “엄청나게 수출을 많이 하던 70~80년대가 회사 전성기였는데 90년대 들어 시장여건의 변화로 회사를 더 키우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며 “힘 닿는데까지 최선을 다해 회사가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겠다” 고 말했다.

 

글 | 김옥열 자유기고가
사진 | 오종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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