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빛고을한바꾸

“안경으로 한 때는 돈 좀 벌었죠”

[[오래된 가게]거북이안경]

“안경으로 한 때는 돈 좀 벌었죠”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0/11/12 10:42
조회수129

 

 

거북이 안경 여근수 대표(70)가 안경사업에 뛰어든 것은 45년 전. 1976년 계림동에서 ‘로얄광학’ 안경렌즈 연마공장을 세우고 소매점인 ‘거북이안경’까지 함께 시작했다. 6년 후 충장로5가 현재 자리로 옮겨 충장로에서만도 38년 째다. 가게 운영만 40년이 넘었지만 사실 여 대표가 안경업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훨씬 오래전이다. 거북이안경을 열기 7년 전인 1969년부터 형이 곡성에서 운영하던 안경렌즈 연마공장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50년을 넘긴 셈. 그렇게 맺은 안경과의 만남은 군 제대후 평생사업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안경렌즈 주문제조와 유통, 판매까지 모두 아우른 여대표의 전략은 적중해 1980~90년대 거북이안경은 호남최대 도매백화점으로 명성을 날렸다. 영상시대로 접어들면서 안경수요가 폭발한 시기와도 맞았다. 최전성기라고할 수 있는 90년대는 점심을 먹으러 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에 안경점 세 곳을 개업시켜줄 때도 있었어요. 도매상으로 납품을 해야하다보면 밥을 못먹어요. 그래서 그땐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돈 세다가 잠자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여 대표가 기억하는 90년대 상황이다. 한 때 안경테 등을 납품하던 단골거래처가 400여곳에 를 정도였고 극장 광고까지 ‘때리던’ 시절이었다.


 한 달 수입이 2천만 원은 기본이고 최고 5천만 원을 넘길 때도 있었다니 알 만 하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IMF 금융위기 후 인건비 상승, 중국산 저가공세 등이 겹치면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2001년 렌즈공장 문을 닫았다. 이후 도소매업만 유지했으나 중국산 제품을 가져다 싸게 파는 안경점들이 크게 늘어난데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안경수요도 하락세로 접어들어 상황은 예전만 못하다. 특히 그는 공장 폐업3년 뒤 같은 안경사인 큰아들 기만(45)씨에게 안경렌즈 도매업을 이어받게 하고 2선으로 물러났다. 지금은 소매점까지 둘째 아들이 물려받아 운영하니까 사실상 은퇴하고 자식들의 멘토 역할만 하는 셈이다. 모든 가족이 안경사여서 거북이안경을 가족기업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 그나마 자랑할 만하다. 여 대표는 물론 부인 김옥님씨, 큰아들, 작은아들까지 모두 안경사다. 2세까지 이어받은 덕에 2019년엔 중소벤쳐기업부가 주관한 백년가게에 선정되기도 했다.


 여 대표는 “안경업을 오래한 지인들이 12명 모여 광학회라는 모임을 했는데 절반은 떠나거나 은퇴하고 겨우 6명 남았고 나만큼 건강하게 활동하는 이도 없다”며 “그나마 건강하게 가게 왔다갔다 하는 게 다행이고 자부심도 든다”고 말했다.


 수십 년 순탄하게 가게를 이어온 배경에 대해 여 대표는 “아무래도 ‘신의’ 아닌가 싶다. 오래 살아남는 성공비결은 진실성에 있고, 진심이 통해야 고객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다. 떼였으면 떼였지 나는 떼먹진 않았다”며신의를 강조했다. 그는 그런 ‘신의’의 중요성을 사업을 물려받은 아들에게도 강조했고, 아버지의 노력이 아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거래처를 지키는 것을 넘어 더 늘리고 있으니 성공한 부자인 셈이다. 가훈이자 사훈을 ‘열심히 진실을 가지고 살자’로 정했다는 여대표의 노력이 빛을 보는 듯하다.


 여 대표의 남은 꿈은 거북이안경이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고 명맥을 이어가고 더불어 충장로가 살아났으면 하는 것이다. 아들들이 경영하면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고객명단을 전산화하는 등 경영방식을 진화시킨 데 대해서도 뿌듯하게 지켜보고 있다. 거북이안경의 번성과 더불어 충장로가 침체를 벗고 살아나는 것도 그의 꿈이다.


 여 대표는 “이제 사업은 자식들이 하니까 맡기고 충장로 상가 활성화에 좀 신경을 쓰고 있다. 올해 ‘충장로 오래된 가게’라는 책을 낸 것도 그런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 2014년부터 충장상인회장을 맡아 활동했는데 올해로 임기가 끝난다”며 “마침 새로 발족하는 충장동 주민자치회장을 맡게 됐는데 동네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더 열심히 살겠다”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

​김영진 자유기고가

 


광주광역시 admin@gwangju.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