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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한바꾸

봄날, 용진산(聳珍山)의 등뼈를 타고 놀다

[빛고을 한바꾸]

봄날, 용진산(聳珍山)의 등뼈를 타고 놀다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1/03/12 13:54
조회수173

 

 광산구 본량동(本良洞)은 살가운 고향의 정서가 곳곳에 남아있어, 쉬엄쉬엄 탐방하기 좋은 동네다. 그중에 용진산은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전국을 두루 살필 때 빼어난 풍광에 반해서 며칠을 묵어갈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용진산은 해발 351m, 석봉과 토봉 두 개의 봉우리가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정상에서 두 개의 봉우리를 이어주는 날등을 타고 오르는 맛에 광주와 주변 지역에 사는 이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전국에서 찾는 등산객들이 사랑하는 산본량 사람들이 이 지역의 진산(鎭山)으로 여기는 용진산은, 광산구를 대표하는 어등산과 함께 널리 알려져서 주말에는 일부러 이 산을 찾아오는 등산인들이 많다.


 광산구 사호동과 본량동 선동과 지산동 경계에 있는 용진산. 정상에 오르면 장성과 영광, 광주를 두루 조망할 수있다. 석봉 쪽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가팔라서 숨이 차기도 하지만, 석봉을 올라서면 마치 신선이 산다는 선계에서 노니는 듯 막힌 숨이 일시에 터지며 더불어 가슴이 펴진다.

 

이 산에 두 개의 봉우리를 잇는 등산로를 타고 가다보면, 문득 거대한 용의 등뼈를 타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저절로 호연지기가 생겨난다. 이 산자락에서 나라를 지켜내는 의병들이 암중모색하며 힘을 길렀던 것도 이유가 있었으리라.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고 당당하게 의지를 지켜서 후대에 모범이 되었던 이들이 머물었던 산은 의로운 광주의 텃자리로 우뚝 서있다.

용진산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가뭄이 들면 토봉에 올라 기우제를 올렸다 한다. 지극하게 온 마음을 다하면 더나은 삶을 열어주었던 산은 민초들의 든든한 의지처였다. 용진산은 멀리서 보면 쌍봉이다. 날카로운 서편이 석봉(石峰), 동편은 토봉(土峰)이다. 두 봉우리 사이 고개
는 배가 넘어간다고 해 ‘배넘이재’라 부른다. 들판에 우뚝 솟아있어 ‘솟돌뫼’라 부르는 산은, 용진산(聳珍山)이 되었다.

 


역사의 고비마다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들이 새겨놓은 터무늬


 용진산의 겹겹이 솟아오른 봉우리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용진층만(聳珍層巒)’이라 한다. 광산구에서는 ‘광산8경’으로 꼽는다. 풍수지리에서는 불의 기운이 강한 산으로 본다는 용진산은 붓끝의 형상을 닮은 산으로도 본다 한다. 이런 산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나왔다. 오자치(吳自治,1426~?), 오준선(吳駿善,1851~1931), 오성술(1844~1910), 오상열(1878~1908), 전해산(1879~1910)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인(文人)과 지사(志士)와 의병들이 이곳을 터전으로 역사의 고비마다 시대를 이끌어갔다.


 임곡동 너브실에서 난 조선의 대학자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이 용진산의 정기를 받은 것으로 전해져온다. 산 아래 쪽에 자리 잡은 용진정사는, 한말 일제의 회유에 단호하고 의연했던 선비 오준선의 절의를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용진동천, 신선들이 사는 터전

용진산 아래 사호천 벼랑도 그 경치가 빼어나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렀다. 이 벼랑길 암벽에, ‘불당일월(佛堂日月) 용진수석(聳珍水石)’이란 글씨와 함께 아미타여래불로 추정되는 용진산마애여래좌상(높이 1.17m,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11호)이 새겨져 있다. 양손을 둥그렇게모아 쥔 형태의 불상은, 밝고 맑은 새 세상을 염원하는 민중들의 염원을 그대로 새긴 것 같다. 마애불 위쪽에는 선조 때 인물인 죽림처사(竹林處士) 박경(朴璟)이 1601년 지은 것으로 알려진 가학정(駕鶴亭)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용진산에서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국에서 몰려든 이들로 금광(金鑛)이 만들어지기도 했단다. 용진정사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는 용진동천(聳珍洞天) 표지석이 서 있다. ‘동천(洞天)’이라 이름 붙인 것은 하늘과 통하는 마을, 신선이 유유자적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라는 뜻일 터. 용진산은 옛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으로 여기며 살아온 옛사람들의 의지가 읽혀졌다. 지금도 마을의 원형질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그 자취를 전하고 있는 본량. 용진동천 용진산에서 광주의 결기와 의기를 다시금 돌아보았다.

​글·사진 김경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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