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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람들

“전통 활쏘기, 자신과의 싸움이자 ‘소·확·행’ ”

[건강유지·집중력 향상·스트레스 해소·만능 운동, 국궁]

“전통 활쏘기, 자신과의 싸움이자 ‘소·확·행’ ”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0/03/04 15:57
조회수80

 

 

“왜 국궁(國弓)을 하세요?”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나는 지난 2015년 1월에 국궁에 입문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때마침 활을 쏘고 있는 지인을 만나러 관덕정에 갔다가 눈 속에서 활 쏘는 모습에 매료돼 시작하게 됐다. 이후 퇴근 후나 주말에 틈틈이 시간을 내광주시 남구 사직공원에 위치한 관덕정(觀德亭·사두 강원주)에서 활을 내며 건강 유지는 물론 ‘마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전통 활쏘기인 국궁을 즐기는 인구는 생각보다 많다. 광주400명, 전남 3000명 등 전국적으로 4만여 명에 이른다. 과거전쟁이나 사냥 목적으로 행해졌던 전통무예인 국궁은 이제 20대부터 8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남녀가 즐기며 심신을 수양하는 ‘생활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광주 4개 활터마다 부자나 부부가 함께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여성들은 ‘여무사’라고 호칭한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문학동네펴냄)에 실린 <활쏘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역시 양궁을 즐기는 이다.


 “화살은 공간을 뚫고 나아가려는 의지의 투영이다. 일단 활을 쏜 후에는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을 눈으로 좇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활을 쏘는 순간까지의 팽팽했던 긴장은 그 순간부터 더 이상 필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날아가는 화살을 좇으면서도, 심장의 고동은 잦아들고 얼굴에는 고요한 미소가 퍼져간다.”

 


 활쏘기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활터에 붙여져 있는 <집궁 제원칙>(執弓諸原則)에서 ‘자신이 쏜 화살이 목표물을 빗나갔다면(發而不中)/ 자신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다시 살피도록 한다(反求諸己)’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바른 마음과 자세(正心正氣), 마인드 컨트롤을 중시한다.
활을 쏘는 사대(射臺)에서 과녁까지 거리는 145m. 가로 2m×세로 2.66m 크기이지만 과녁을 맞히기란 쉽지 않다. 국궁은양궁과 달리 과녁 어디든 맞히면 된다. 과거에는 ‘고전’이과녁 옆에서 깃발로 ‘관중’(貫中)여부를 알렸지만 현재는 과녁에 센서를 부착해 불빛이나 소리로 알 수 있도록 했
다.


 ‘줌손은 태산을 밀 듯 앞으로 밀며(前推太山)/ 깍지손은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기듯 뒤로 당겨라(後握虎尾).’ ‘전추태산 후악호미’라는 여덟 자의 한자는 활쏘기의 원칙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활은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물리학 법칙을 활용하는 도구다. 화살을 과녁에 정확히 보내려면 활을 쥔 앞손(줌손)과 화살을 건 활시위를 당기는 뒷손(깍지손), 밀고 당기는 팽팽한 힘이 균형을 이뤄야만 한다. 활을 쏠 때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바람
이 그러하다. 과녁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촉 바람’, 등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오뉘 바람’이라고 부른다.


 활은 탁구나 테니스와 같은 스포츠와 달리 상대방이 없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대개는 여러 사원들과 어울려 활을 낸다. 사원들은 허리에 두른 궁대(弓帶)에 화살 한 순(巡·5발)을 찌르고 사대에 오른다. 발은 정(丁)자도 팔(八)자도 아닌 자세로 하고, 화살을 현에 걸고 천천히 당기며 가슴을 비우고 복부에 힘을 준다. 활시위를 당기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에는 ‘깍지’를 끼운다.


 관덕정은 아침 6시부터 밤10시께까지 개방돼 있다. 각사원(射員)들의 생활 패턴에 따라 활터에 나와 활을 쏘는 시간대가 다르다. 오전에는 60~80대 퇴직한 어르신들이 많고, 저녁에는 30~50대 청·장년층이 주를 이룬다. 공무원과 판사, 의사, 교사, 개인사업자, 주부, 학생등 직업도 다양하다.
국궁의 매력을 느끼려면 직접 해봐야 한다. 건강 유지와 집중력 향상, 스트레스 해소, 친목도모 등에 좋다.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 같을 때 활을 내고 나면 개운해진다. 활터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봄철 사대에 오르면 잔디는 물론 주변 나무에서 발산하는 연초록 빛깔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릴때 활 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58년째 국궁을 하고 있는 관덕정 김석제(73) 고문은 광주 국궁의 산증인이다. 할아버지부터 아들까지 4대가 국궁의 맥(脈)을 이어오고 있다. 활 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14살에 활을 처음 잡았는데 최근 ‘명예 9단’에 올랐다. 특히 전통 활인 ‘각궁’(角弓)을 손수 만드는 장인이기도 하다. 김 고문은 “활은 쏠수록 매력이 있다. 깍지를 떼고 나면 살이 ‘기러기 눈썹처럼’ 예쁘게 몇초 날아갈 때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활은 크게 전통 활인 ‘각궁’과 카본재료로 만든 ‘개량궁’으로 나뉜다. 화살 역시 시누대로 만드는 ‘죽시’(竹矢)와 카본으로 만든 ‘개량시’ 두 종류다. 일반적으로 카본활과 화살을 사용하고, 어느 정도 기량을 쌓은 사원들이 각궁과 죽시를 쓴다.


 흔히 중국은 창, 일본은 칼, 한국은 활의 나라라고 부른다. 광주는 올림픽 무대에서 ‘금빛화살’을 쏜 서향순과 기보배, 최미선 등을 배출했다. 국궁 역시 광주시체육회궁도 실업팀은 전국체전 금메달을 매년 석권하고 있는 강팀이다. 이처럼 광주가 국궁과 양궁 모두 독보적인 성적을 거두는 까닭은 300여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활터(射亭) 역사와 함께 ‘활 DNA’가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활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바쁜 생활 속에서 활력소가 된다. 짬을 내서 집 또는 직장 근처 활터를 찾아 국궁의 매력 속에 빠져보길 권한다.

 

송기동 광주일보 문화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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