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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람들

운명처럼 ‘글 깨우침이’ 한 길

[30년째 한글교실 운영 이정자 씨]

운명처럼 ‘글 깨우침이’ 한 길

작성자광주속삭임
작성일시2020/10/23 09:41
조회수96

 

 

 군내 나는 좁은 부엌에 주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선 좁다란 공간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모두 글공부를 떼지 못한 이들이다.


 제대로 된 교실도 아니었고, 심지어 교재도 없었지만 그날의 열기는 뜨거웠고 ‘가갸 거겨’ 글 외는 소리는 땅거미가 진즉 내려앉은 밤늦은 시간까지도 끝없이 이어졌다. 

 지금으로부터 66년 전의 기억이다. 전기도 없는 시절 늦은 밤 부엌에서 열린 한글 야학이었다. 그 뜨거운 열기는 이정자(76)씨의 가슴에도 불을 지폈다. 30년 째 주부들을 위해 광주에서 ‘주부 한글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가 ‘광주학당’의 문을 열게 된 계기다.   “10살 때 쯤, 그러닌까 1950년대에 우연히 대학생 오빠들이 주부들을 모아두고 한글 야학을 여는 모습을 봤어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시기였죠.


 어린 나이에 좁은 부엌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글공부를 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봤을까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인생의 전환점은 아마 그때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정자씨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결혼을 해 가정주부가 됐고, 자녀들을 키웠다. 서예공부도 했다. 그러나 늘 가슴 한켠에는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었다.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었다.


 마음 한켠으로 늘 고민만 하던 어느 날 퍼뜩 운명처럼 그날의 광경이 떠올랐다. 1990년 10월의 어느 가을이었다. “비로소 이것이 내가 가야만 하는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남편에게 한글 공부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한글교실을 열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정작 응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반대했어요. 자녀들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참아달라’고 만류했어요. 3일 밤낮을 잠도 못자고 고민했죠.”


 그러나 그의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지금과 같은 마음이 들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끈질긴 설득 끝에 가족들도 결국 그의 뜻에 힘을 보탰다. 당시 돈으로 3,500만 원을 들고 서방시장을 찾아갔다. 서방시장 2층에 마련한 작은 교실하나와 교무실 하나. 30여년 한글공부의 터전이 된 ‘광주학당’의 시작이다.


 1990년.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조차도 없던 시절 시작된 한글교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글을 배우지 못해 평생 설움을 품어왔던 주부들이 광주학당을 찾았다. 14살 소녀부터 45세 아주머니들까지 80여명이 몰렸다.  “글 공부에 목말라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을 줄 상상도 못했어요. 결국 혼자서 한글수업을 하기 버거워 대학교를 찾아갔어요.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회장을 만나 무작정 도와달라고 했어요. 봉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 선생님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어요.”


 대학생들과 광주학당의 인연은 2003년까지 이어진다. 제법 기틀이 갖춰지자 한문반과 청소년 공부방도 마련했다. “당시에는 서방시장이 큰 규모였는데 부모들이 장사하느라 바빠 시장에서 노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시장으로 가면 열댓 명의 아이들이 줄서서 따라다니곤 했죠. 아이들이 방학 때 공부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광주학당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광주학당에 들어온 이들 중에는 초·중·고등의 과정을 마치고 검정고시를 통해 당당히 대학에 입학한 이도 있다. 지금은 대학생 교사들 대신 퇴직 교사들이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만은 여전히 이정자씨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한글 수업도 많아지고, 그동안 우리나라의 교육 수준도 많이 향상돼서 최근에는 학생들이 많이 줄었어요. 학당 운영도 참 어렵죠. 그래도 학생이 많든 적든 학당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에요. 한명이라도 글을 몰라 속앓이를 하는 이가 있다면, 저의 작은 나눔이
누군가의 행복의 씨앗이 되길 바라요.”

​김진영 전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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