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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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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5‧18 열사

서부원×백성동 선생님 2022.05
편집자주
누군가는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떠나간 이를 그리워한다.
5월. 세상에 다시 없을 계절을 보내며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기억해야 할 5‧18 열사>

-서부원 백성동 선생님 편-

또 한 번의 5월이 광주를 찾아왔다. 꽃망울이 터지고 녹음이 짙어져 봄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지만, 광주의 ‘5월의 봄’은 다른 의미로 아름답다. 80년 이곳은 민주화를 향한 열망으로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치열했으며 찬란했다. 수많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 아래 세워진 ‘오월 정신’은 42년이 흘러도 여전히 빛을 내며 자유, 인권, 평화를 갈망하는 전세계인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오월 정신과 숭고한 희생들. 오늘은 광주의 오월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기꺼이 바친 열사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한다.

죽음으로 광주를 알리고자 했던 ‘김의기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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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기 열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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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기 열사 묘역

민중의 아들‘김종태 열사’

‘5‧18’은 1988년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서 역사적으로 중대한 가치를 인정받으며 ‘5‧18민주화운동’으로 공식 명명되었다. 이전까지는 5‧18 광주민중항쟁으로 불리었는데, 이름만으로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노동자’들이 있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마지막 항쟁지였던 전남도청에 남아있던 이들도 대부분이 노동자들이었다. 또 5‧18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 중심에 김종태 열사가 있다. 고립된 광주의 진실을 밖으로 꺼내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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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태 열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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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태 열사 묘역

우리가 5‧18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어김없이 5월은 찾아왔고, 광주의 시간은 42년 전 그날로 되돌아간다. 우리는 5‧18을 왜 기억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5‧18을 겪었던 세대, 겪지 않은 세대 모두에게 전하는 오월 정신의 의미에 대해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