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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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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품질제일주의’
인쇄시장 우뚝

품생품사: 품질에 살고 품질에 죽는다 2022.12
글 · 사진 김종구 에세이스트
광주속삭임 12월 제60호 발췌
오직 ‘품질제일주의’로 인쇄시장 우뚝
창업 60년 넘긴 광주인쇄 터줏대감
해외시장까지 개척하며 ‘100년기업’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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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대표적인 인쇄업체인 광주 동구 문화전당로 ‘성문당’ 인쇄공장에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온 글귀다. 사훈처럼 보이나 이수만(85)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사훈이 아니라고 하나 공장 내부에 함께 걸려있는 ‘고객 클레임 0% 도전’이라는 펼침막을 보면 성문당이 품질향상에 얼마나 힘쓰는지를 대변하고 있다.

성문당은 1960년 8월 15일 광주 충장로 1가에 문을 열었다. 이 대표가 군대 가기 전에 친구 매형이 운영하던 인쇄소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개업한 것이다. 약관 23세에 성문당을 창업해 오늘에 이르게 한 성공 요인을 묻자, 이 대표는 “그저 삶에 운이 좋았다”라고 빙긋 웃었다. 인쇄업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못 배워서... 글이 좋아서”라고 짧게 답했다. 성문당은 한자 표기로 ‘省:살필성, 文:글월문, 堂:집당’이고, 한글로 풀이하면 글을 살피는 집이니 언뜻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성문당은 창업 초기에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잘 버틴 덕분에 1967년 인쇄사로 신고하면서 공식 등록업체가 됐다. 이런저런 부침을 거쳐 성장하던 성문당은 1981년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상 수상을 계기로 이듬해에 광주 동구 남동 34-1번지로 확장, 이전했다. 가게 이전과 함께 당시로써는 최신 기종인 일본 사쿠라이 인쇄기와 독일 하이델베르그 옵셋 인쇄기를 도입하면서 급성장했다. 1988년 출판사로 등록하면서 비로소 종합 인쇄소로 면모를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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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인쇄정보협동조합’ 결성

지역 출판업계의 활로를 모색하던 이 대표는 1992년 ‘광주.전남 인쇄정보협동조합’을 결성해 초대 이사장에 취임, 6선을 거치면서 인쇄업 발전에 헌신했다. 그 과정에서 인쇄인들로 구성된 신협도 만들었으나 조합원 간 불협화음 등으로 5년여 만에 문을 닫아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과 인쇄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지역 인쇄업계에 우뚝 선 성문당은 2000년 롯데백화점 협력업체 등록과 함께 전일실업출판국 인수합병, 국제표준화기구(ISO)9001 품질.환경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으면서 2008년 ‘주식회사 성문당’이란 법인으로 전환했다. 법인 전환을 계기로 현재 위치로 사무실과 공장을 이전했다. 2007년 삼성전자 협력업체 등록한 뒤 2010년 성문당 태국지사, 2015년 성문당 말레이시아 지사, 2016년 베트남지사를 각각 설립했다. 성문당은 각종 가전제품에 쓰이는 대부분의 인쇄물을 제작한다. 냉장고나 핸드폰, 청소기 등을 담는 상자나 포장지 인쇄부터 사용설명서, 제품에 붙어 있는 상표 등 거의 모든 것을 인쇄한다. 성문당은 롯데백화점과 삼성전자 외에도 광주은행 등 기업과 관공서 인쇄물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 성문당 사무실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걸린 게시판에는 “60년, 반세기 이상 한국 인쇄기술을 선도해 온 인쇄의 명문입니다”라고 적혀있다. 광주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인쇄기업이란 자부심을 표현한 대목이다.

인쇄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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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당이 광주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인쇄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이 대표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대표는 위기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다. 1980~90년대에는 전남도와 광주시 등 관공서에서 발주하는 인쇄물이 많았다.

관공서 인쇄물량이 많다 보니 업체 간 경쟁도 심해지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많았다. 1992년 광주.전남인쇄정보협동조합을 만들어 수주에 따른 업체 간 과당경쟁은 다소 줄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시.도청을 비롯해 각 기관이 발간실을 설치해 자체 인쇄를 하는 바람에 인쇄물량이 대폭 줄어 출판업계가 위기를 맞기도 했다.이 대표는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끝에 대기업 협력업체가 되었고 이를 통해 ‘100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이 대표에게는 100년 기업의 가업을 이어갈 두 아들이 있어 든든하다. 큰아들은 국내 사업장을, 둘째 아들은 태국 사업장을 각각 맡아 일하고 있다.

광주 인쇄업계 산증인인 이 대표에게 지역의 현실과 전망을 물었더니 “안타깝고 어둡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우선 지역 업체 간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자기 주장들이 너무 강해서 양보할 줄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과도한 입찰경쟁을 들었다. “1년 갈 것을 마치 10년 갈 것처럼 죽기 살기로 뛰어든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입찰은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으로 수익이 나지 않아 결국 너도 죽고 나도 죽는 어리석은 것이라는 충고로 해석된다. 업계 발전을 위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수익을 보장하는 선에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폼생폼사: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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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폼생폼사: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기업에는 통하지 않는다. 기업이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하다 보면 자칫 사업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외적 모습보다 내실을 더 다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업에는 ‘폼생폼사’보다 ‘품생품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성문당 공장에 걸린 글귀가 일깨우는 듯했다. 이 대표는 “인쇄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다른 업종이 한 삽 뜰 때 인쇄업은 열 삽을 떠야 따라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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